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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름날의 거짓말>, 혹은 진실202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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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날의 거짓말>, 혹은 진실
김경욱(영화평론가)
손현록 감독이 연출한 <그 여름날의 거짓말>(2023)은 고등학교 1학년 다영(박서윤)이 좌충우돌하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다영은 ‘기억에 남는 추억을 쓰라’고 하는 여름방학 숙제에 겪었던 일의 일부를 쓰게 되는데, 담임선생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영을 추궁하면서 파란만장한 사연이 펼쳐진다. 여름방학 동안의 시련은 다영이 열애를 나누던 같은 반 병훈(최민재)에게 갑자기 결별을 통보받으면서 시작된다. 다영이 담임선생의 추궁에 거짓말을 섞어서 대답할 때, 영화 화면은 플래시백으로 넘어가 진짜 있었던 일을 보여준다.
느닷없이 실연당한 다영은 임신한 아내가 있는 과외선생을 찾아가 의도적으로 유혹해서 성관계를 갖는다. 그런 다음 다시 병훈을 만나고, 병훈과 함께 과외선생의 아내를 찾아가 성관계 사실을 폭로한다. 그리고나서 다영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낙태를 한다. 길지 않은 여름방학 동안 좌충우돌하며 별별 사건을 다 겪는 다영이라는 인물에게 이상한 점이 없지 않지만, 이 영화에서 더 문제적인 인물은 다영을 둘러싼 어른들이다.
먼저 적극적으로 유혹한 다영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 성관계의 책임은 전적으로 과외선생에게 있다. 다영은 미성년자이고, 과외선생은 어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외선생은 다영이 유혹한 증거를 내밀며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하다. 다음으로 문제적 어른은 담임선생이다. 담임선생은 다영의 숙제를 보고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하면서 집요하게 추궁한다. 심지어 그가 다영을 자기 차에 태워 음식점에 가서 돈까스를 사주면서까지 진실을 말하라고 강요하거나 남자친구가 누구인지 너무나 궁금해할 때, 다영에게 성적 욕망을 품었는지 하는 의심까지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자신의 추측을 통해 다영의 남자친구가 병훈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다음, 다영과 병훈을 마주 보게 앉혀놓고 “징계위원회에 넘기겠다”며 협박조로 말하면서 두 사람에게 각각 일종의 자술서를 쓰게 한다. 그들의 진술에 차이가 나면, 다영이 숨기고 싶었던 거짓말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담임선생에 대한 변태적인 느낌은 더욱 강화된다.
이제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을 살펴보자. 다영은 담임선생에게 병훈과 펜션에 가서 100일을 기념하는 소소한 파티를 준비했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다영과 병훈은 다양한 색상의 풍선을 잔뜩 분 다음 테이프를 붙여 풍선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만든다. 다영은 즐거운 표정을 하며 핸드폰으로 그 광경을 찍는다. 두 사람이 소고기를 굽고 소주잔을 부딪칠 때, 풍선 하나가 떨어져 불길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진짜 기념일 파티 같다.
다음 장면에서 다영이 끝내 담임선생에게 말하지 못한 거짓말의 핵심이 펼쳐진다. 병훈이 펜션의 방 손잡이를 다영의 배에 수없이 가격해 낙태를 시도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분명 끔찍하고 불쾌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낙태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가 없는 것도 아니고, 훨씬 더 적나라하고 잔인하게 묘사된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장면이라도 개연성이 성립한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다영과 병훈이 이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낙태를 결정하기까지를 설명하는 장면이 없기 때문에, 장면의 개연성이 떨어지면서 납득하기 어려워진다. 다영이 임신 사실을 알리며 아이를 낳겠다고 완강하게 주장했을 때, 다영의 엄마는 낙태를 종용하며 크게 화를 냈다. 이후 다영은 집을 나와 이곳저곳을 전전하지만, 나중에 보면 다영은 엄마에게 완전히 내쳐지지 않았다. 낙태한 다영이 엄마와 함께 산부인과에 가서 진료받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미루어보면, 엄마는 다영을 산부인과에 데리고 가서 낙태를 할 수 있게 도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그렇게 위험하고 엽기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했을까? 그들이 낙태를 시도할 때, 임신으로 부풀어 오르던 자궁이 꺼져가는 것을 상징하듯 공중에 달려 있던 풍선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이 장면을 감독이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연출했던 것일까?
앞에서 언급했듯이 영화는 다영과 병훈이 마주한 장면으로 끝났다. 두 사람이 자발적으로 만났다면 이 장면은 엔딩으로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영이 거듭 병훈과 헤어졌다고 말했는데, 담임선생의 강요로 두 사람이 마주하게 된 설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너무 모호하다. 차라리 영화의 또 다른 결말처럼 제시되었던, 다영이 춤을 가르치는 학원에 등록해 춤을 배우며 오래전부터 꿈꾸던 일을 시작하는 장면으로 끝났다면 더 나은 엔딩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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